[충남서부보훈지청] 2020년도 우리고장 현충시설 연재 여섯 번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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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부보훈지청] 2020년도 우리고장 현충시설 연재 여섯 번째 인물
  • 충남서부보훈지청 선양팀장 이은희
  • 승인 2020.11.2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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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상록수 문학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심훈의 필경사"
선양팀장 이은희
선양팀장 이은희

영신은 창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 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썻다.
누구든지 오너라 “, ”배우고자 무슨 일이든지 한다.“나무에 오르고 담에 매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 보고 읽는다.
바락바락 지르는 그 소리는 글을 외는 것이 아니라, 어찌 들으면 누구에게 발악을 하는 것 같다. '심훈의 ‘상록수’ 본문 중에서'

필자가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렸던 소설 상록수의 일부 구절이다.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시절, 국어책에 실린 이 글을 읽다보면 점점 감정이입이 되어 목소리가 떨리고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 치하에서 예배당 담장 밖으로 쫒겨나 나뭇가지에 매달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글을 읽는 모습이 상상되며, 일제의 압박으로 학생인원을 줄여야 하는 주인공의 안타까움과 배우고 싶어도 쫒겨나야 했던 학생들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글의 원문을 궁금하고 있을 때 우연히 고등학교 필독도서에 속해있는 소설 상록수를 접하게 되었다.
별 기대를 하고 손에 잡은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소설속 주인공 채영신이 되어 농촌계몽운동도 하고 연인이었던 박동혁을 상상속에 그려보며 마지막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만큼 푹 빠져서 읽었었다.

책을 다 덮고 처음부터 빠르게 책장을 넘겨보며 든 생각은 소설속 시대적 배경이 일제 강점기였는데 작가의 상상력에서 탄생하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이용해서 어찌 이리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있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었을까?

암울했던 시절 역경을 헤쳐가며 주인공이 농촌계몽운동을 펼치는 과정도 감동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연인이었던 박동혁과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시대가 한참 지났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아 여고생인 필자를 설레게 했다.

끝내 여주인공이 죽음을 맞는 믿고 싶지 않은 결말을, 남주인공이 연인의 뜻을 이어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을 굳게 다짐하는 것으로 애써 ‘열린 결말이었다’라고 위로하려 해도, 늘 푸른 상록수처럼 이승에서 맺지 못한 사랑을 그렇케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애틋한 남주인공의 마음이 느껴져서 ‘그냥 영신을 살려주지’ 살짝 작가에 대한 원망도 해보고... 나에게는 이런저런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적 흥미요소가 총 망라된 최고의 소설이었다.

그러면서, 소설을 지은 ’심훈이란 작가는 정말 천재적인 이야기꾼이구나’ 라는 생각에 심훈선생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과 팬심을 마음에 품는 계기가 되었다.그렇케 소설가로서 알고 있던 심훈을 다시 만난 것은 당진의 필경사에서였다

필경사전경
필경사전경
상록수 주인공을 표현한 조형물
상록수 주인공을 표현한 조형물
그날이오면 시비
그날이오면 시비

상록수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심훈은 소설가이기 앞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그는 1919년 3월 경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중에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은 바 있다.

이후에도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활발한 문필활동에 종사하였으며 상록수외에도  「불사조」등 다수 작품에서 강렬한 항일저항의식을 표출하고 식민지 시대 한국인의 민족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정부에서는 이러한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필경사는 이러한 독립운동가이면서 소설가였던 심훈의 문학 산실이었던 곳으로 국가보훈처의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으며, ‘붓으로 밭을 일군다’라는 뜻을 담아 심훈선생이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고 알려져 있어 곳곳에 그의 취향과 성품이 담겨있는 듯 하다.

너른 앞마당에는 소설 상록수의 정경을 그려볼 수 있는 몇 개의 조형물이 깔끔하게 정돈된 조경과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다.
덧붙여, 시비에 적혀있는 그의 시「그날이 오면」을 한 소절 한 소절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간절히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이를 위해 분투하였는지 절절히 느껴져 온다.
안타깝게도 살아서 그 희망이 실현되는 걸 보지는 못했으나 묵직한 돌에 듬직하게 쓰여진 시상을 떠올리며 결국 그도 우리나라가 독립이 될 것을 확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필경사를 지나 심훈기념관으로 들어가면 그의 문학 세계와 일대기를 살필 수 있는 유물과 흑백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독립운동가이면서 신문기자, 영화제작자, 연기자, 시인, 소설가 등으로 활동했던 다재다능한 면모의 심훈선생을 만날 수 있어 경이로우면서도 그래서 더욱 36세에 작고한 그의 짧은 생애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상록수 출간물
다양한 상록수 출간물
심훈의 일대기
심훈의 일대기
심훈의 일대기
심훈의 일대기
상록수의 시간속으로
상록수의 시간속으로

일제 강점기의 암울했던 빈곤속의 농촌 계몽활동을 통해서 민중을 깨우치며 희망을 찾고자 노력했던 심훈의 체취와 숨결이 느낄수 있는 필경사 마당은 이제는 시간이 멈춘 듯 더없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람객이 많지 않은 요즈음, 짧은 생애였지만 우리들에게 커다란 족적을 남긴 소설가로, 뜨거운 피를 가진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심훈의 발자취를 찾아 늘 푸른 상록수가 반겨주는 고즈넉한 필경사를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암울하고 억압된 시절, 불멸의 지식인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후손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는 이러한 분이 우리들의 선조로서 이땅에 숨쉬며 살았었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는 작금의 현실에 희망과 자부심을 주는 충분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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