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보훈지청] 2020년도 우리고장 현충시설 연재 일곱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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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부보훈지청] 2020년도 우리고장 현충시설 연재 일곱번째
  • 충남서부보훈지청 선양팀장 이은희
  • 승인 2020.12.3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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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우국충절 청양의 면암 최익현 사당 『모덕사』
선양팀장 이은희
선양팀장 이은희

이번호에 소개할 우리고장 현충시설은 충남 청양을 대표하는 우국충절의 대표적 인물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당을 모신 모덕사이다.

교과서에서 열심히 외운 인물인 면암 최익현선생에 대해 단번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원군, 상소, 단발령, 쓰시마 섬, 유배, 단식 등으로 올곧고 강직한 성품의 대쪽같은 이미지가 연상된다.

학창시절에는 시험공부를 위해 외우느라 그의 삶을 제대로 되돌아볼 기회가 없었으나, 보훈공무원으로 재직하며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지대한 분들에게 주어지는 대한민국장 훈장이 우리나라에 단 31명뿐이며 그렇케 대단한 분중에 한분이 우리지역 청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면암 최익현이라는 사실에 은근 자부심이 들며 이번 연재를 계기로 그의 삶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모덕사 전경
모덕사 전경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난 면암 최익현은 만 22세 문과에 급제해 벼슬을 시작했으며 이후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혼란했던 구한말 시대의 고비마다 불의와 부정에 앞장서 부당함을 척결하고자 앞장서서 상소를 올렸고, 그의 상소는 시대의 큰 반향을 불러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무리한 경복궁 중건으로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 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부터 강화도 조약 체결 반대, 을사늑약 항거, 개항 반대 상소 등 구한말 위태로운 나라를 걱정하며 쓴 그의 상소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구구절절 담겨져 있어 우국충정의 뜻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일본의 죄상을 16개 항목에 적어 항쟁하며 전라북도 태인에서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의병을 모집하였다.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대마도에 유배되었고, 적군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하다 끝내 순국하였다.

모덕사당
모덕사당

모덕사는 이러한 조선 후기 대학자이며 의병대장으로 앞장섰던 면암 최익현선생의 항일투쟁과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였으며 고종황제가 보낸 밀지 내용 중 “그대의 덕을 사모한다‘라는 구절에서 그 명칭을 칭했다고 한다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연못을 마주하고 고풍스런 기와 건축물 앞에 펼쳐진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청양 10경의 하나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경내에는 영정이 모셔진 영당과 위패를 모신 사당외에도 그가 살았던 고택, 서책, 서간문 등이 보관되어 있는 춘추각, 유품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대의관 등이 있다

유물
유물

유물전시관에는조정에나갈때입었던조복과스승인이항로선생으로부터 받은 호인 면암 현판, 고종황제의 밀지, 문방구를 비롯한 소품과 교지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고, 대마도 감옥에서 단식으로 순국 전 오직 나라를 걱정하며 고종황제께 마지막으로 올린 유소도 소개되어 있다.

신의 나이 74세이니 지금 죽은들 무엇이 아까우리까만, 다만 역적을 능히 치지 못하고 원수를 능히 없애지 못하며 국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강토를 도로 찾지 못하여 4천년 화하의 정도가 흙탕에 빠지는 것을 붙들지 못하고 삼천리강토에 있는 선왕의 백성이 어육이 되는 것을 구하지 못하였으니....이는 신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유소에서 그는 일본이 주는 한술의 밥이나 한 모금의 물도 마실수 없다며 죽음앞에서도 의리를 지키어 선왕에게 부끄러움이 없고자 하는 기상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고정의 밀지
고정의 밀지

코로나 19로 총성은 없지만 전쟁과 다름없는 일상이 지속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연못 너머에서 지나치게 평화로워 보이는 아름다운 모덕사의 풍광을 바라보노라니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다같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지금하고는 비교도 안될만큼 훨씬 힘들었던 난세시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시대의 부조리를 개선하고자 하였으며, 구국의 일념으로 노구를 이끌고 의병활동의 선봉에 섰던 면암 최익현 선생과 같은 꽃보다 아름다운 선조들의 희생으로 누리는 일상이 새삼 감사한 시기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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