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보훈지청] 여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상태바
[충남서부보훈지청] 여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 충남서부보훈지청 보훈팀장 윤여국
  • 승인 2021.04.08 12: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훈팀장 윤여국
보훈팀장 윤여국

노란 개나리가 피는 따뜻한 봄이 왔다. 화창한 봄날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발생의 비상시국부터 우리는 전처럼 봄날을 지내진 못하고 있다. 코로나 발생 이전의 당연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코로나가 하루빨리 해결되길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비상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이한다.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기존에는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는 자료를 근거로 4월 13일로 기념해왔으나, 100주년이었던 2019년부터는 4월 11일에 기념하고 있다.

임시정부는 3·1운동을 계기로 수립되었다.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 되면서 전국에서 저항운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의병활동으로, 비밀결사단체로, 교육운동으로 등 각기 다른 민족운동이 있었다.

이런 와중에 1919년 3월에 비폭력운동인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3·1운동은 온 민족이 참여하여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민족의 절대독립을 요구한 민족운동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이 독립국임’을 대내외 선포했으니,

이를 대표할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3·1운동을 통해 표출된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집결시키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외의 8곳에서 일어났으며, 상하이를 거점으로 1919년 9월 통합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되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지 9년 만에 민족의 대표기구로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임시정부의 헌법인 임시헌장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하여 민주공화제 정부로 수립되었다. 비록 ‘임시’라는 관용어가 붙긴 하였지만, 이로써 한민족 역사에서 최초 민주공화제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임시정부의 수립은 3·1운동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 3·1운동을 통해 민족적 대단결이 이루어졌고, 민족의 대단결의 결과가 임시정부 수립으로 나타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거점으로 시작했으나 일제의 탄압 등으로 본거지를 옮겨가며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임시정부는 여러 가지 특수한 상황으로 독립운동을 펼치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일제에 항거하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끌었고 우리는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였다.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어 임시정부는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시작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대한민국은 이런 인고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으로 우리는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 되어 가고 있다. 코로나는 이제 하나의 현상이나 이슈가 아니라 사회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 모멘텀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때이다.

 우리는 민족이 대단결하여 일제의 탄압을 이겨내 독립을 쟁취하였다.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맞아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애국선열의 오롯한 희생에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코로나 시대에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선조들이 국난을 극복했듯 우리도 단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