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보훈지청] 90년 전의 불꽃 세상을 진동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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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부보훈지청] 90년 전의 불꽃 세상을 진동시키다
  • 충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선양담당 한원정
  • 승인 2022.05.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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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선양팀장 한원정
충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선양담당 한원정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는 어느 날 한 조선 청년의 의거 소식을 듣고 이렇게 감탄했다. 이 의거는 우리 민족의 자국 내 독립운동 활동에 부정적이었던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지원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이는 곧 임시정부가 한국광복군을 조직하는 데에 큰 발판이 되었다.

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한 3‧1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하고, 만주 사변을 일으켜 중국 동북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등 기세가 등등하던 일본에겐 통렬한 한방이었다. 이 의거로 일본은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를 비롯한 수많은 수뇌부를 잃었고, 전 세계인에게 자신들의 식민지인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게 됨으로써 만주사변에서 상하이 사변에 이르는 승리가 무색해지는 등 국제적 위신까지 꺾이게 되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의거는 한국인이 일제의 식민 통치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알림으로써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민(韓國民)이 노예적인 상태에 놓여있음을 상기하면서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국가로 만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공원 의거와 그 의거가 가져온 큰 결과였다.

이때의 우리 민족은 암담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연이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을 보며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의 식민지배에 순종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족의 독립의지를 한데 모았던 임시정부는 휘청거렸다. 그렇게 우리 민족의 운명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수렁에 빠져있었다. 독립에 대한 회의론과 절망이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던 시기였다.

우리 민족의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청년 윤봉길은 그렇게 세상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대를 막론하고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전쟁의 포성이 가득했던 100년 전만큼이나 세계화란 이름으로 사회, 경제, 문화가 촘촘히 얽혀있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호흡만으로도 번지는 전염병 하나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세상에서 나 혼자가 아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앞장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또한, 앞장설 용기를 낸다 해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의 행동에 확신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혼란한 시대를 살았던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선열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오직 독립, 그리고 민족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였다. 윤봉길 의사가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嫁生不還)’라며 망설임 없이 다짐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5년 9월 2일, 미국 전함 미주리 호에서는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렸다. 불확실하던 민족의 해방이 확실해지던 순간이었다. 이때 일본 대표였던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는 지팡이를 짚은 채 다리를 절고 있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로 한쪽 다리를 잃은 자였다. 수많은 독립운동과 수많은 선열들의 헌신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역사는 그렇게 증명해주었다.

경천동지(驚天動地)라는 말이 있다. 윤봉길 의사의 불꽃은 글자 그대로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들었다. 천지를 진동시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자신의 손으로 바꾸었다. 이에 광복 이후 김구 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모친 김원상 여사를 만나 “아드님 덕분에 이렇게 광복이 빨리 찾아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많은 선열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명확하다. 어리석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위대한 헌신과 노력을 기억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불확실성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민족 최고의 암흑기를 윤봉길 의사와 같은 선구자들의 용기 있는 한발자국들로 이겨냈듯 오늘날의 코로나 판데믹과 러-우크라 전쟁 같은 국경을 뛰어넘는 위기도 우리는 용감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뒤흔든 불꽃이 된 청년, 윤봉길 의사에게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가장 크고 깊은 감사와 존경의 인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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