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항산 구익균 선생, 대전현충원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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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항산 구익균 선생, 대전현충원에 잠들다
  • 한상욱, 이준희 기자
  • 승인 2013.12.2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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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흥사단 대전충남광복회 등 참석...엄숙히 진행

[MBS 대전 = 한상욱·이준희 기자]

항산 구익균 선생의 영정과 유골을 운구중인 모습.
독립운동가 항산 구익균 선생이 12월 20일 오후 3시 30분 대전 현충원에 잠들었다.

이날 안장식에는 고인의 유족, 윤석경 대전충남광복회 지부장, 신준태 대전현충원 의전관, 김학원 전 대전시의장, 이창걸 국민대 교수, 양무석 대전보건대 교수와 흥사단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이창걸 국민대 교수(도산 안창호 혁명사상연구원장)는 추모사에서 “고인의 크고 높은 뜻을 되새기며 도산사상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말하고 오동춘 (대전흥사단)시인은 추모시를 낭송 “큰 별이 지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유족들과 관계자들의 분향이 이뤄졌다.

1908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하 1928년 신의주 학생 의거의 주역으로 1929년 상해로 망명,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 흥사단에 입단, 비서로써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헌신, 한국독립당의 지도책으로 한국독립 혁명운동가 양성에 온 힘을 기울였다.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중국 상해 교민관리위임장을 받고 개인사업으로 번 70만불을 광복 후 귀국을 원했던 학병, 학병탈주병, 국내귀국자들의 경비에 모두 충당했고 독립운동가 가정들에 돈을 나눠준 일은 오늘 날에도 회자가 되는 유명한 일화이다. 1947년 8월 김구, 김규식 선생과 함께 통일독립촉진회를 결성했다.

이후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의 혁명재판소에 회부 통사당(통일사회당)간부 14명과 함께 반국가행위의 죄목으로 체포되어 형을 받고 8개월간 수감, 독립운동의 공이 인정되어 집행유예 4년을 언도받았으나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1964년 대일굴욕외교와 월남파병반대를 펼쳤으며 1970년대 군사정부와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정치 및 사회적 활동을 제약받는 등 해방이후 반독재투쟁에 앞장을 서왔고 혁신계통인사들을 지원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고 2005년 도산 안창호 혁명사상연구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2013년 4월 8일 향년 105세로 타계, 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었으나 국가보훈처가 발인을 하루 앞두고 돌연 안장을 취소했다.

선생이 1972년 사문서 위조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1973년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선생의 막내딸 구혜란(57)씨는 지난 5월 14일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국가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며 흥사단 국내지부와 대뉴욕지구 광복회와 미주흥사단 뉴욕지부, 뉴욕한인사회 등에서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후 지난 11월 26일 “도산 안창호의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고 일제에 항거하다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의 형을 받는 등 고인의 생전 공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고인이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며 안장을 거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은 부당하다”고 행정심판위가 결정했다./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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