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원대, 구(舊) 신학관 복원 9월 9일 준공
상태바
목원대, 구(舊) 신학관 복원 9월 9일 준공
  • 이준희 기자
  • 승인 2013.09.09 2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BS 대전 = 이준희 기자]


목원대학교(총장 김원배)는 옛 목동캠퍼스 시절 채플(대학교회)과 함께 학교의 상징이자 모체였던 ‘구(舊) 신학관’ 복원공사를 박영태 이사장, 김선도 감리교 전감독회장, 김신호 대전시교육감, 박성효 국회위원 등 교내외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9월 9일 11시 준공했다.

지난 2000년 대학이 지금의 도안동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사라진지 13년만의 일이다. 목원대는 준공식과 함께 ‘구 신학관 복원 준공 감사 예배’를 개최하였다.

‘구 신학관 복원’은 이사회와 대학, 동문회, 지역사회 등이 총동원된 역점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구 신학관’ 복원을 위해 280여명이 19억 8000여만 원을 기부했다. 김원배 총장은 “단순히 건물 하나를 복원한 게 아니라 목원 정신의 표상을 되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구 신학관은 목원 정신의 표상

이번에 복원된 ‘구 신학관’은 대학 설립자인 도익서 박사(Dr. Charles D. Stokes) 사택, 남자 기숙사, 채플 등과 함께 가장 먼저 목동캠퍼스를 구성했던 건물 중 하나였다.

1956년 봄 착공해 같은 해 8월 준공된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이었다. 건물은 미국 감리교 선교부의 도움으로 지었으며, 감리교 대전신학원의 강의실과 행정사무실 등으로 사용됐다. 목원대의 역사를 지켜오면서 건학정신인 감리교 목회자를 만들어 낸 산실 역할을 해온 셈이다.

목동캠퍼스는 ‘구 신학관’을 중심에 두고 확장됐다. 신학관은 주 진입로를 지나 언덕에 오르면 가장 먼너 만나게 되는 건물이었다. 신학관 앞으로 중앙광장에 해당하는 자유의 광장과 채플실이, 서쪽에 도서관, 동쪽에 신학대학원 등을 두어 미션스쿨로서의 상징성을 담아냈다. 뒤쪽으로는 잔디밭과 신축 강의동 등이 들어섰다.

1954년 대전지역 최초의 사립대로 출발한 목원대는 현재 3000여 명의 목회자를 배출했다.

구 신학관 복원까지의 여정

목원대는 2000년 현대적 조형미를 갖춘 아름다운 도안동캠퍼스로 이전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 구석 진한 허전함을 느꼈다. 목원의 정신을 상징하는 ‘구 신학관’이 자리 잡지 못해서다.

‘구 신학관’ 복원이 추진된 것은 김원배 총장이 취임한 2010년부터다. 김 총장은 “목원정신의 표상이 더 이상 표류해서는 안 된다”면서 취임과 함께 ‘구 신학관’ 복원을 약속했다.

곧장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기금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대학 구성원과 동문 기업인, 동문 목회자, 지역민 등이 앞 다퉈 성금을 냈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지난 8월말 기준으로 280여명 19억 8000여만 원.

여기에 건축학과 김정동 교수가 대학원생 및 학부생들과 건물 철거 전 실측 후 복원설계서를 작성해 놓은 게 큰 도움이 됐다. 오늘을 예측한 일이었다. 완벽한 건물구조 재현이 가능한 것은 모두 이 덕분이다.

신학관 복원과 함께 대학 재도약 다짐

복원된 ‘구 신학관’은 채플 남쪽에 연면적 1581.85㎡(470여평)에 지상 2층, 지하 2층으로 지어졌다. 지붕은 기와로 마감했다. 특히 외벽공사에 쓰인 벽돌은 목동캠퍼스 철거 당시 수습해 보관한 벽돌을 사용했다. 역사성과 상징성을 더 한 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학관에는 대학의 역사기록을 전시하는 ‘역사박물관’과 한국 감리교회사의 필수적인 기록물을 보관하는 ‘목원대학교 역사자료실과 감리교 역사자료실’ 등이 설치된다. 대학 측은 근대문화재 등록도 추진할 예정이다.

박영태 이사장은 “한국전쟁 직후 선교사들이 신학에 바탕을 두고 농촌지도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목원대학교의 모체가 되는 ‘구 신학관’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며 “목동캠퍼스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진 동문들이 도안동 첨단캠퍼스에서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총장은 “목원대의 정신과 역사가 담긴 구 신학관 복원은 정통성 회복과 더불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구심점”이라며 “이를 계기로 대학이 재도약하는 계기로 삼자”고 역설했다. 그는 또 “기금운동을 시작할 때는 과연 20억원을 모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기적처럼 목표액을 모두 모금할 수 있었다”며 “한국 기독교역사의 상징이기도 한 ‘구 신학관’에 대한 근대문화재 등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