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보훈지청]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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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부보훈지청]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 충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김태훈
  • 승인 2021.07.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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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과 김태훈
보훈과 김태훈

자유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어디서나 필요합니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그 자유 때문입니다.” - 미 육군 윌리엄 빌 맥페린 -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은 이름조차 낯선 나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한 22개국 195만 유엔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날이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북한의 남침 사실을 보고 받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지시한다. 같은 날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남침을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적대행위의 중지와 북한군의 38선까지의 철수를 요구했다.

북한이 이를 무시하자 이틀 후인 27일에는 유엔군의 파병을 결의한다. 유엔군을 지휘할 통합군사령부가 설치되고, 맥아더가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우선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 규슈에 주둔하던 미 제24보병사단의 투입이 결정되었고, 사단장 딘 소장은 찰스 스미스 중령이 지휘하는 제21연대 제1대대 병력과 페리 중령이 지휘하는 제52야포대대의 1개 포대 병력으로 특수임무부대를 구성하여 선발대로 먼저 부산에 보냈다.

이 특수임무부대가 바로 유엔군으로서 첫 번째 교전인 오산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스미스 부대다.

1950년 7월 5일, 스미스 부대는 오산 북쪽 죽미령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 제4사단·제107기갑연대 등과 약 6시간 동안 방어전을 가지며 지연작전을 펼쳤다.

이 전투로 스미스 부대 540명 중 150여 명이 전사하고 26명이 실종되는 큰 희생을 치렀지만, 그 대가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필요한 귀중한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북한군은 유엔군의 참전으로 그 기세가 꺾이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하는 등 우세를 보였지만, 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결국 민족 간의 비극적인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3년여 간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남긴 채 휴전을 맞이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전쟁 폐허를 딛고 일어나 경이적인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면서 현재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71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희미해져 갈 수도 있겠지만,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 위에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충남서부보훈지청은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온라인 감사 프로젝트인 ‘위드유(With U)’를 개최한다. 금번 프로젝트는 참가자 휴대폰으로 패들렛에 접속해 QR코드를 스캔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위드유’에는 유엔참전용사와 관련된 영상과 사진, 그리고 22개국 참전사와 이와 연계한 퀴즈가 다수 게시되어 있으며,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 새겨진 글이다.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산화한 국군 및 유엔군 참전용사를 생각하면 그 의미와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고 감사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나아가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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