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역사와 문화
상태바
금강의 역사와 문화
  • 뉴스밴드
  • 승인 2009.02.16 1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유병로 한밭대교수
금강의 역사와 문화

‘비단처럼 아름답다’해서 비단강이라 불리운 금강은 산과 들이 어루러진 아름다운 강으로 지역의 풍치와 함께 금산에서는 적벽강, 충북 옥천 등 상류지역은 적등강(赤登江), 공주지역은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으로 불리웠다.

전북 장수군 신무산(해발 897m) 중턱에 있는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용담댐을 거쳐 충남 금산, 충북 남부(영동·옥천)로 북향하다가 대청댐에서 약 200일 쉬어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대전, 충남 남서부를 관통해 서해로 흐른다.

본류의 길이는 총 397.79㎞(1012리), 면적은 9810Km2으로 남한에서 낙동강, 한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길다. 금강권역의 인구는 약 7백만명(대전 150만, 충남200만, 충북150만, 전북 190만)으로 용담댐(2001년 준공)년 및 대청댐(1980년 준공)을 통하여 충청권 및 전북권 약 500만명의 생공용수를 공급하는 생명수이다.

댐건설로 생태계의 단절,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물론 댐주변의 기상변화와 우수한 경관의 훼손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댐건설로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였고 안정적으로 생공용수를 공급하여 만성적으로 해마다 되풀이되던 가뭄을 해결하여 도시 및 내륙 산업단지의 건설이 가능해졌다.

또한 하류지역의 농업용수 및 하천유지용수를 공급하여 농업생산성을 증가시키고 하천의 안정적 수중생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금강주변은 선사기대부터 최적의 삶의 터전이었다. 금강변에 자리잡은 공주 석장리, 부여 나복리, 서천 장암리에는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이 남아있다.

고대에는 백제 문주왕이 한성을 버리고 웅진에 천도하면서, 부여 사비성과 호남평야를 기반으로 금강은 백제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또 금강은 일본, 중국과 왕성한 교류를 하여 백가제해의 해상왕국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다.

조선시대 금강과 계룡산을 중심으로 조선 수도의 후보지로 부상하였으며, 조선 후기 풍부한 농업을 기반으로 공주, 강경은 전국적인 상업지역으로 발전하였다. 강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문물교류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해마다 열리는 공주와 부여의 백제문화제는 현재에도 강을 중심으로 한 국내 최대의 문화행사로 손꼽히고 있다.

금강은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물류의 이동통로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물론 작은 배였으나 모든 해산물을 육지에 운송하고, 육지의 농임산물을 해변도시와 외국으로 운송하는 수단이 되어 삼국시대 백제는 금강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과 교류하는 해상왕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장항, 강경은 수산업이 발전하였고, 해상물류의 중심 상업지역으로 발전하였으며, 공주와 부여는 백제의 문화유적을 중심으로 금강과 함께 관광문화도시로 발전하였다. 대청댐이 축조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금강을 통해 대전까지도 뱃길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문헌에 의하면 금강에는 5여개의 나루와 포구가 있었다. 대전의 경우에도 신탄진은 비교적 큰 나루였으며, 갑천의 삼천동 및 어은동까지 뱃길이 닿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전시에 강은 임시방어진이 되기도 하였으나, 각종 군수품과 병력을 이동하는 수단이 되어 전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금강은 충청내륙의 농산물을 수탈하는 수송로가 되었으며 장항, 군산은 일본으로 물류를 이동하는 주요한 항구였다. 물론 해방후에도 군산에는 미군기지가 주둔하여 미국과의 물류를 교류하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금강은 1980년 대청댐, 그리고 금강하구둑이 막히면서 금강의 물길과 더불어 물을 중심으로 한 교통수단, 물류이동이 중단되었다. 따라서 장항, 강경, 부여, 공주는 경제활동은 급격히 쇠퇴하여 지금은 충남의 낙후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금강하구둑이 들어서기 전까지 밀물 때 하구로부터 64㎞에 있는 부여군 규암면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과거에는 200톤 정도의 큰 배는 강경포구는 물론 부여 백마강까지 왕래하였으며, 소규모 배(50여톤)는 130㎞ 떨어진 충남 연기까지 운항할 정도로 내륙 수운이 발달했다.

그러나 하구둑의 건설로 장항앞바다에서 강경에 이르는 기수역( 바닷물과 강물이 섞여 있는 구간)으로 다양성이 풍부했던 생물종은 단순화되었고 뱀장어, 참게 등 회유성 어종이 대부분 사라졌다. 또 선박의 왕래가 금지되었고 강경, 부여등 금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백제의 옛 도시들은 충청권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 되었다.

금강살리기 사업은 강의 제방을 보강하여 치수 안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만들어진 제방에 도로를 설치하여 물류이동을 원활히 하여 지역발전을 유도하고, 자전거길 산책로를 설치하여 지역민의 여가공간 및 삶의 질 향상을 꾀하며, 아름다운 금강과 백제의 찬란한 역사문화를 복원하여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