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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요섭 편집장
  • 승인 2009.04.0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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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의 얼굴
2. 일본의 힘, 성실함(まじめ)

일본인은 마지매(まじめ 성실함)라는 말을 매우 좋아한다. 마지매와 더불어 ‘잇쇼우켄메이(一生懸命최선을 다해 열심히)’라는 말도 좋아한다.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 시절 무사들의 지상 명령은 영지를 지키는 일이었다. 한 장소를 목숨을 걸고 지켜낸다는 뜻의 한 장소(一所 잇쇼)와 목숨을 걸다(懸命 켄메이)에서 유래되어 잇쇼우켄메이(一生懸命)란 말이 탄생했다. 그냥 ‘열심히’ 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서 최선을 다 한다’ 는 뜻이다.

나는 첫 달 생활비, 등록금만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 이상의 생활비며 학비는 스스로 조달해야 했다. 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함께 일한 일본인들은 한 결 같이 성실했다. 어떤 의미로는 도에 지나칠 정도로 융통성이 없어 보였다.

상사가 ‘자네는 요 앞을 걸레로 닦게!’라고 지시하면,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걸레질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깨끗해져서 더 이상 닦지 않아도 될 터인데 시킨 사람이 그만 두라고 할 때까지는 계속 그 일을 하는 것이었다. 요령이라고는 부릴 줄도 모르고 그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어찌 보면 좀 멍청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모든 일본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대다수 일본인들의 기질이 그렇다는 말이다.

매뉴얼 천국이라 할 정도로 일본 사회는 매뉴얼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고, 한 번 실수 한 것을 다시 실수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국민성 탓이 크다.

그들의 단점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교과서 적이어서 독창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돌발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모든 일에 빈틈이 없고 정확하다. 그들의 정확한 성격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계 제일의 기초과학국가, 제조 국가로 성장시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인지 일본에서는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고가 매우 작다. 내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해서 열심히 뛰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연일 대형 사고가 터졌다.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뒤 이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벌어졌다. 일본의 공중파 방송에서는 밤낮으로 건물과 다리가 무너진 원인과 인명 구출 장면을 생방송으로 보도 했다.

친하게 지내던 일본의 지인(知人)들은 내게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전해왔지만, 창피하고 난감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일본은 일 년에 열 번 이상 태풍이 정면으로 불어온다. 게다가 매년 스무 차례가 넘는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인명피해는 발생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맹목적으로 예찬하고 싶지는 않다. 또 무조건 모방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현명한 사람은 누구에게서든지 배울 점을 찾는 것이다. 그들의 장점은 배우고 우리의 잘못된 점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말에는 ‘어영부영, 대충, 적당히’란 말이 있다. 몇 해 전 개그맨 장모씨가 유행시킨 ‘그까이꺼 대충’ 이런 말들은 사람의 목숨이나 건강을 좌우하는 곳, 예를 들어 건축 현장, 병원 수술 현장, 식품을 만드는 곳에서는 절대로 쓰여서는 안 된다. 얼마 전 경기도 일원에서 발생하여 전국의 초중고생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집단 식중독 사건도 안일한 식품 관리로 인해 빚어진 결과가 아니었던가?

일본인들은 자기가 힘이 없을 때에는 비록 원수나 적 앞에서도 쉽게 화를 내거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는다. 한마디로 승산이 없는 싸움은 시작도 않는다. 그 대신 아무도 모르게 힘을 키워서 반드시 그 빚을 되 갚아주려고 한다. 도쿄에서 가까운 치바(天葉)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일본인 친구 기무라(木村)와 렌터카를 공동으로 대여하여 쓰기로 했다. 주문 배달에도 쓰고 개인적인 일에도 쓰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사장님께서 일부 돈을 내주고 나머지는 우리 둘이 공동 부담했다.

차를 대여한 다음 날, 내가 그 차를 끌고 밤에 배달을 나갔다가 실수로 뒤 범퍼를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기무라에게 사고 사실을 알렸다. 그의 이름으로 렌터카를 대여하고 보험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달려온 기무라는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짜증을 냈다. 그날 저녁 여자 친구와 드라이브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던 모양이었다.

초보운전에 사고가 나서 가뜩이나 언짢았던 나는 그만 발끈해져서 ‘그럼 보험처리 하지 마! 그냥 내가 변상할 테니까’ 이렇게 내 뱉어버렸다. 그런데 기무라는 사장에게 내가 사고를 친 주제에 사과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유 없이 화를 냈다고 고자질을 했다.

나는 그와 심하게 다투다가 급기야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나이로 보나 덩치로 보나 나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던 그는 웬일인지 영 힘을 쓰지 못했다. 가벼운 상처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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