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19 민주 혁명일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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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19 민주 혁명일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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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3.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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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세종·충남 4.19 혁명회 회장 최영상
대전·세종·충남 4.19 혁명회 회장 최영상

오는 2022년 4월 19일은 62회 '4.19 혁명일'이다.

우리 학생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마다 항상 용감했고 국가를 구해냈다.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 '광주 학생운동'이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 사건' 그리고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학생 혁명'등이 모두가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주동이 된 대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1960년 3월 8일 대전고등학교 학생 1,000여 명이 부정선거 방지와 독재 타도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펼쳤고 3월 10일에는 대전상고 학생 600여 명이 거리로 나섰다. 이어서 대전공고, 보문고, 대전여고 등의 학생들이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

경찰들이 대전공업고등학교 등 고등학교를 완전히 포위하여 총칼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삼엄한 단속 속에서도 철망을 부수고 담을 뛰어넘고 몸을 던져 가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항거를 했다.

그리고 4월 18일에 고려대학교 학생 삼천여 명의 데모에 이어 1960년 4월 19일 아침 8시 40분 대광고등학교 등 일천여 명의 데모 학생들이 노도와 같이 밀려 나오고 동국대와 서울대 학생들이 합류하여 삽시간에 각 대학생들과 고등학교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서울과 대도시는 학생들의 데모로 파도를 이루었다.

“부패정치 물러가라!” “독재정치 물러가라!”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 학생들의 거센 파도와 외침에 경찰들도 막을 수가 없었다.

최루탄을 써서도 안 되어 소방차로 물을 뿌리다가 오히려 학생들의 돌과 벽돌의 공격을 받고 경찰들이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오후 1시가 넘어 드디어 경찰의 발포가 시작되고 순식간에 학생들 수십 명이 길바닥에 쓰러지기도 했다. 부상자와 학생들의 항거와 연막탄 소리와 총성으로 경무대 앞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에도 일부 학생들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함성은 계속되고….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데모대들의 힘찬 목소리는 대함성으로 변했다….

이기붕 의장의 집 앞에서는 “이 의장은 사퇴하라!”, “부정선거 다시 하라!” 외치는 학생 데모대들의 함성에 드디어 4월 26일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함으로서 정권은 물러나고 민주주의는 이 땅에 다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2년이 되는 지금!

아직도 남한과 북한은 이념 전쟁으로 그칠 줄 모르는 갈등에 쌓여 있고, 주변의 강대국들은 자국의 안전과 발전만을 챙기며 우리 민족의 홍익사랑 정신과 인류평화를 위한 타고르의 밝은 동방의 등불은 밝힐 날을 기약하지 못하고 있다.

★ 동방의 등불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는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서
길을 잃지 않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젊은 학생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토록 무성한 들꽃으로 피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금수강산 내 조국 무궁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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