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찹쌀떠억~!망개떠억~”을 외치는 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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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찹쌀떠억~!망개떠억~”을 외치는 민이
  • 뉴스밴드(편집부)
  • 승인 2010.11.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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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떠억~!망개떠억~”을 외치는 민이

“여보세요. 민진희 시인이시지요?”
“그런데요. 누구시죠?”
“저 민이에요. 반가워요 누나”

민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몇 해 전의 기억 속으로 아득하게 빨려 들어간다. 민이를 알게 된 것은 교도소 선교를 하고 계시는 이목사님을 통해서였다.

고아이면서 어릴 때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던 청년에 대한 상담을 내게 부탁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민이에게 가끔 편지를 보내 주곤 했었는데, 민이는 담 안에서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유려한 문장으로 내게 답장을 보내주곤 했었다.

거대한 사회에 한 다리를 디디고 서 있는 것만도 버거웠을 텐데, 고아인 민이가 수인(囚人)이 되었다니. 민이는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았다는 지독한 외로움과 분노로 인해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쉽게 받았다. 억눌린 분노가 터지면 곧바로 폭력으로 이어졌고, 교도소 안에서도 차별대우를 받는듯하면 교도관들에게 반항하기 일쑤였다.

대구 교도소로 처음 민이를 면회하러 갔을 때는 단아한 키에 미청년이었지만 얼굴에 짙은 우수가 드리워져있었다. 나는 타는 듯 가슴이 애련(哀憐)하여 영민을 위한 묵도를 드리고 짧은 면회를 끝냈다. 그리곤 민에게 내 시집과 에세이집, 그리고 그 아이가 필요한 책들을 보내주기도 하고, 인터넷 서신을 주고받다가 얼마 후면 출소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소식이 끊겨버렸다.

‘어딘가에서 잘 살기를~!’ ‘다시는 담 안에 들어가지 않기를~!.주님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하곤 했었는데 내 기도 속에서 조차 민이가 희미해질 무렵, 민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목소리에 활기가 넘쳐 무슨 좋은 일이 있었을까 짐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는 내게 민의 즐거운 대답이 쏟아졌다.

출소후에 누나의 연락처를 잃어버려서 그동안 연락을 못했다고. 출소후에 알게된 6살 연상 누나를 만나 결혼을 했고,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해 보다가 찹쌀떡(망개떡) 장사를 하게 되었노라고. 추억의 찹쌀떡 장사 재미가 쏠쏠하다고, 민이가 1,000명도 넘는 전국의 판매원 중에서 1위 판매원이 되어 TV에도 잠시 나왔었다고 한다.

목소리에 기운이 넘치는 걸 보니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본 사랑과 행복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갖게 된 것 같았다.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도 세상을 원망하며 할 수 없다고 주저앉아, 백수가 되어 지하철 여기 저기를 떠돌거나 구걸하는 사람도 많은데, 고아이면서 장애를 갖고 있고,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민이의 씩씩한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엊그제 누나 보고 싶다고 내가 사는 곳에 장사를 하러 왔다고 하기에 남편과 함께 한달음에 달려가보았다.

그랬더니 한쪽 다리로 목발을 짚고 목에는 돈통을 걸고 등에는 무거운 찹쌀떡 가방을 메고 우렁차게 “찹쌀떠억~~! 망개떠억~~!”을 외치며 불편한 몸으로 시장 바닥을 누비고 있었다.

손을 덥썩 잡고, 저녁을 사 주겠다는 내 제의도 마다한 채, 민이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저녁이 시작되는 이 시간에 반짝 팔지 않으면 다 팔수가 없으니 다음에 차분히 시간을 내서 아내와 함께 다시 오겠단다.

민이의 얼굴에 넘치는 희망의 빛~! 그건 아마도 고아에다 장애인이며 전과자이기까지 한 민이와 결혼해준 6년 연상인 누나의 지극한 사랑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사업을 시작으로 백만장자가 되어보겠다는 민이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다음에 이쁜 아내 데리고 오면 누나가 멋진 저녁을 대접하겠노라는 약속에 “아닙니다. 누나...제가 누님께 저녁을 사드려야죠...”한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다리 한쪽이 없고 돈통을 목에 메고, 등에는 무거운 떡 가방을 지고 목발을 짚고 다니며 우렁차고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로 “찹쌀떠억~!망개떠억~”을 외치는 민이를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돌리는데 가슴 한쪽이 아릿해져 온다.
그래 인간을 일어서게 하는 힘은 믿음이고, 나아가게 하는 힘은 소망이며, 존재하게 하는 힘은 사랑이란다.

비록 네가 백만장자가 되지 못했더라도 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졌으니 넌 이미 성공자야. 누나가 널 다시 기도로 응원한다. 두 다리가 없고 두 팔이 없이도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희망의 전도사가 되고 있는 닉 부이지치처럼 약한 자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너와 너의 착한 아내, 그리고 너의 미래에 가득하기를~!

*민이에게 주려고 닉부이지치가 쓴 Hug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민이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민이의 외적인 조건을 하나도 따지지 않고 결혼해준 그 착한 아내에게는 석은옥여사님께서 필요한데 쓰라고 제게 직접 싸인해서 전해주신 그대는 나의 등대, 나는 그대의 지팡이라는 책을 전해주려고 합니다.

맹인에다 고아이기까지한 한 소년에게 자신의 전부를 희생한 석여사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남편과 자식이 번갈아가며 백악관에 입성하였죠. 강영우 박사님은 장애인정책 차관보로 아들 크리스토퍼강은 오바마 대통령 법률특보로..

시인 민진희.
결혼에 너무나 많은 조건이 붙는 이 세상에서 두 여인의 진실한 사랑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 꿈을 포기하는 것은 창조주를 상자안에 가둬 버리는 짓이나 다름없다.
-닉 부이지치 Hug 중에서.
시인 민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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